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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그녀를 떠나야 그녀를 보았다

서천꽃밭 불야성 - 제주도 시ㆍ사진 화보집 '가슴에 담을수록 아름다운 제주' 발표작

by 숨비 소리 2009. 8. 15.



서천꽃밭 불야성 /
김태일


한여름 깊은 밤
연화못 돌담 기어오르던 연꽃이
신산만산
별빛 담아내느라
가던 길 멈추고
도시가 내뿜는 불야성은
온 바다 가득 뜬 집어등과 더불어
자청비* 신화를 되새김질한다
플라톤이 그리던 이상향

제주인이 꿈꾸던 환상의 섬
'이어도'가 바로 이곳인 듯

니체가 죽었다고 고뇌하던 신
가시나무 등걸에 걸린
문도령* 주검이 환생한 듯

하늘 땅 아우른 제주바다 불야성이
신화 속 자지러지던
부엉이 울음소리 포근히 재우고

서천꽃밭, 천국의 문을 살짝 연다
탑동 바당 연인들의 눈길에는
활활 타오르는 '칼 선 다리' 건널
자청비*의 사랑이 소낙비로 내리고
짙은 마스카라 젖은 눈동자엔 
눈물 한 방울



* 자청비와 문도령 : 제주신화 '자청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주인공
- 자청비가 환생꽃을 얻어다 죽은 문도령을 환생시킴

* 2005. 8. 10.


* 위 시는 제주 신화 '자청비'와
불야성이 된 한 여름 밤, 제주바다 풍경을 소재로 썼습니다.

자청비는 하늘나라 문도령을 연화못에서 만나자마자 사모하여,
남자도 하기 어려운 온갖 험난한 모험을 다 견뎌내며
그 사랑을 이룹니다.

문도령 아버지가 문도령 신부감을
이미 점찍어 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청비는
하늘나라 문도령 아버지의 뜻대로 며느리 시험을 치러,
활활 타오르는 불길 위에 세워놓은 칼들로 만들어진 다리를
간절한 기도 끝에 소나기의 도움으로 무사히 건너
문도령과의 사랑을 이루지요.

그런데 우리의 자청비에게는 시련도 많습니다.

동네 건달들이
자청비와 문도령의 사랑을 시기하여
독이 든 술로 문도령을 죽이고 만 것이지요.

하지만, 자청비의 문도령에 대한 사랑은 죽음을 뛰어넘습니다.

서천꽃밭 꽃감관의 요청대로
밤마다 꽃들을 망치는 커다란 부엉이를 알몸으로 꼬셔서 사로잡아
서천꽃밭 환생꽃을 얻은 우리의 자청비...

우리의 사랑하는 자청비는
이러저런 곡절을 넘고 넘어
가시나무에 걸려있는 문도령의 주검을 환생시켜
다시 사랑을 이루지요.

제주시 앞 제주바다 주변의 불야성을 바라보면서
이 신화에 등장하는 서천꽃밭이 이보다 더 아름다웠을까하는
생각에 이르자,

'아하, 이곳이 바로 하늘나라 서천꽃밭이다.'
'이곳이 바로 우리 제주인들이 꿈꾸던 이상향, 환상의 섬, 이어도다.'
라는 생각이 불현듯 내 정수리에 내리꽃혔습니다.

제주바다에 떠 있는 고기잡이배들의 집어등과
제주시의 불야성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별들이 모두
이 하늘 아래 하늘나라 아닙니까?

이곳이 바로 서천꽃밭, 천국이지요.

저기, 제주 탑동 바닷가를 다정한 연인들이 거닙니다.
아하, 자세히 들여다보니
모두 자청비와 문도령이군요.

사랑,
사랑은 불꽃입니다.
그칠줄 모르고 타오르는 자청비의 사랑의 불꽃.. ^.~**
이러한 사랑이 이 세상에 충만하길 기원합니다.
이 곳이 곧 서천꽃밭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