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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그녀를 떠나야 그녀를 보았다

새벽 빗소리

by 숨비 소리 2009. 8. 15.



새벽 빗소리

김태일


생명의 소리
내 영혼 두들기는 소리
새벽잠 깨우는 빗소리
대추가 익어가는 유년의 초가을
동네방네 울려퍼지던 어머니 다듬이질 소리
모두가 잠든 새벽
초가지붕 머리맡에 달아둔 닭장에서
어미닭이 계란 쪼는 소리
몇 천 년 구천하늘 구름 속에 숨죽여 기다리다
이 여름 신록을
피아노 건반인양 두방망이질 해대며
삶을 재촉하는 새벽 빗소리
하얀 백지 위를 달리는 펜 소리
배고픈 영혼의 소리
생명의 소리


* 환생꽃 : 제주 신화, 서천꽃밭 '꽃감관'에 등장하는 꽃의 한 종류로서,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 꽃

2005. 8. 7 새벽


* 아래는 詩作 과정입니다.

제주에는 오늘 새벽부터,
올 해 들어 비다운 비가 처음으로 신이 나게도 대지를 두드려 대는군요.
어느 피아니스트가 이렇게 통쾌하게 대지의 건반을 두드릴 수 있겠습니까?
오로지 자연만이 연주할 수 있는 곡이지요.

오늘 새벽, 빗소리에 어렴풋이 깨어, 꿈결이 시키는대로
주변을 더듬어 백지 한 장과 펜 한 자루를 찾아 신이 들린 듯 써내려갑니다.

마치 백지 위를 달리는 저의 펜 소리가 사각사각
저 대지 위 뭇 생명들의 영혼을 깨우는 자연의 빗소리를 닮아갑니다.
이내, 빗소리와 펜소리는 말발굽 소리를 닮아갑니다.

백제의 계백장군과 신라의 화랑 김관창의 말발굽 소리가 급하게 달려옵니다.
어머님이 황사평 잔듸 물결을 헤치고 유년의 어느 가을로 돌아가
다듬이 방망이질을 해댑니다.

생명을 일으켜 세우는 소리
한라산신령이 재치있게 생명을 훔쳐 줄행랑치는 소리
성령이 내린 무녀의 요령소리
어미 닭이 달걀을 쪼아 생명을 탄생시키는 소리

생명의 소리
새 생명을 잉태하는 배고픈 영혼의 소리
새벽비 소리
소리
소리...

神이 내리는 시의 냇물..
詩의 성령.. ^^

저의 영혼은 저의 펜과 더불어 오늘 새벽,
신이 쏟아붓는 시의 냇물에 흠씬 빠졌습니다. ^.~**

 

 


2005. 8. 7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