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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둥지에 내리는 실비 소리 / 김태일
뜰 앞 포도나무 잎 위에 실비 소리 아른아른 속삭입니다.
따스한 봄 햇살 아래 올챙이들이 알에서 깨어날 즈음 개구쟁이들에게 하늘에 뜬 구름을 담아주던 어느 호젓한 오솔길 연못이 거미줄 가까이 날갯짓하는 호랑나비에게 속살거리던 소리가 그랬지요. 청소년 시절 조심조심 다가간 해수욕장에서 훔쳐 본 미끈하게 펼쳐진 모래사장이 백마처럼 밀어닥친 파도가 금세 밀려나갈 때 바다를 향해 야드르르 애원하던 소리도 바로 이 소리였습니다. 아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 시커먼 아스팔트 위를 종횡무진 무단 횡단하며 나뒹굴던 그 가을의 낙엽 구르는 소리가 그랬지요. 그 언제인가, 함박눈이 소복소복 쌓이던 어느 겨울 저녁, 어머니가 옛이야기 들려주며 내 까까머리를 쓰다듬던 소리도 이 소리였습니다.
뜰 앞 포도나무 잎에 실비가 내립니다. 이 세상과 시간을 빌어 자식을 낳아 기르는 내 가난한 뻐꾸기 둥지에 오늘도 실비 소리 아른거립니다.
2005.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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