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도 모르는 제사
김태일
오늘이 그 외삼촌 제삿날이주
누가 눈치챌세라
초가지붕 위 제사 음식 고수레도 못 하던 제삿날이주
4.3 무자년이었주
이유도 모른 채 쫓기던 외삼촌이
마루 밑에 땅굴을 파고 견디다 주위 시선이 두려워
산으로 오른 건 가을이었주
60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는
뒤란 대나무들도 모두 꽃을 피웠주
그 대나무를 잘라 죽창 만들었주
결국 팽나무에 목이 매달렸주
못다 핀 동백꽃이 들길에 흩뿌려진 와흘 산골이었주
마지막 숨을 거둘 즈음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고 전하여 오주
그 목에 밧줄을 걸어 질질 끌며 마을 마을 조리돌리다
관콧 바다 멀리 수장되었주
깊은 밤 이 누이가 몰래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냈주
동백꽃 지듯 그렇게 외삼촌은 갔주
오늘은 외삼촌 제삿날이주
누가 볼세라 까마귀도 몰래 지내는 제삿날이주
'<발표시>제주바다 숨비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당도 뒈싸지멍 갈라지멍 울었주 - 김태일 (0) | 2022.02.09 |
---|---|
선물 / 김태일 (0) | 2021.09.20 |
동심童心 / 김태일 (0) | 2021.09.20 |
보리밭 탈곡기 소리 / 김태일 (0) | 2021.09.20 |
소나기 - 김태일 (0) | 2021.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