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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시>제주바다 숨비소리

보리밭 탈곡기 소리 / 김태일

by 숨비 소리 2021. 9. 20.

 

 

 

보리밭 탈곡기 소리

 

 

김태일

 

 

나만 살았주

모두 박성내에서 콩 볶듯 쏴버렸주

시신은 사태 끝나고 이빨이나 옷가지 모양으로 찾았주

 

자복이 무슨 뜻인지 몰랐주

거기 가면 무조건 살려준대서 마을 사람들에 떠밀려

얼떨결에 트럭에 올랐주

 

누군가 속삭였주

아무리 큰 잘못이 있어도 자수하면 살려준다는데

마지막 지푸라기일지도 모른댔주

순간 어리버리 온몸이 오싹했주

기회를 엿보다 트럭이 진드르에 접어들 즈음

어스름에 몸을 기대어 달리는 트럭에서 뛰어내렸주

 

죽을힘을 다하여 달렸주

너무 숨이 차 보리밭 돌담 틈에 몸을 숨겼주

고장 난 탈곡기처럼 타닥타닥

위아래 이빨이 경련을 일으켜 마주쳤주

엉겁결에 보리를 한 무더기 뽑아 흙과 함께

이 입을 틀어막았주

주변 보리들이 작두날에 잘리듯 잘려 나갔주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주

돌담 틈으로 혈안이 되어 나를 찾는 모습이 보였주

4나던 해 초겨울이었주

 

그 길로 산에 올랐주

똑똑한 사람들 다 죽고 나같이 멍청한 사람만 살았주

나만 살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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