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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시>제주바다 숨비소리

까마귀도 모르는 제사 / 김태일

by 숨비 소리 2021. 9. 20.

 

까마귀도 모르는 제사

 

 

김태일

 

 

오늘이 그 외삼촌 제삿날이주

누가 눈치챌세라

초가지붕 위 제사 음식 고수레도 못 하던 제삿날이주

 

4.3 무자년이었주

이유도 모른 채 쫓기던 외삼촌이

마루 밑에 땅굴을 파고 견디다 주위 시선이 두려워

산으로 오른 건 가을이었주

60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는

뒤란 대나무들도 모두 꽃을 피웠주

그 대나무를 잘라 죽창 만들었주

 

결국 팽나무에 목이 매달렸주

못다 핀 동백꽃이 들길에 흩뿌려진 와흘 산골이었주

마지막 숨을 거둘 즈음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고 전하여 오주

그 목에 밧줄을 걸어 질질 끌며 마을 마을 조리돌리다

관콧 바다 멀리 수장되었주

깊은 밤 이 누이가 몰래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냈주

동백꽃 지듯 그렇게 외삼촌은 갔주

 

오늘은 외삼촌 제삿날이주

누가 볼세라 까마귀도 몰래 지내는 제삿날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