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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시>제주바다 숨비소리

연북정戀北亭 - 김태일

by 숨비 소리 2015. 5. 12.

 

 

연북정戀北亭

김태일

아침 하늘에 풋 햇살 날리고

창밖 수평선에 눈이 베이는 이 봄

오늘도 그녀는 연북정에 올라

북녘을 바라본다

할아버지가 탄 돛배가 집채만 한 파도에 휘감길 때나 호각 소리에 쫓긴 아버지가 저 바다를 건널 때나 검둥개에 쫓긴 남편이 쪽배를 띄울 때나 늘 숙명처럼 눈길이 가던 북녘,

이제 그곳엔 마파람 따라가 소식 없는 자식들의 뒷모습이 아릿아릿 수평선을 넘나들고 있다

누군가 바이칼 호에선가 해란강 가에선가 그 애절한 노래를 들었다는 첫째와 언젠가 모란봉에선가 금강산에선가 옷깃을 스쳤다는 둘째와 마포대교 난간에선가 서울역 무료급식소에선가 눈길이 마주쳤다는 막내와

유배인의 상투처럼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흩뿌려진 현무암 암초를 힘겹게 휘돌아 나가던 조천포 바다가 슬쩍 희끗희끗 휘날리는 그녀의 귀밑머리를 훔쳐본다

멀리 불탑사도 만세동산도 첨탑 머리에 이고

옷자락 펄럭이며 하늘로 치솟는데

그녀의 눈길은 오로지 북녘을 응시한다

순간 그녀의 눈 속으로 다시 폭풍이 밀려온다

파도가 철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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