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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그녀를 떠나야 그녀를 보았다

어부 시인이 낚아 올린 은하수

by 숨비 소리 2009. 9. 2.


어부 시인이 낚아 올린 은하수
 - 이성윤 시인의 처녀시집을 읽고 -


김태일


여보게, 지금 어딘가?
자네 처녀시집이 나왔다네
읽다 보니 밤이 새는군
아마 자넨 지금도 바다 깊이 단잠에 빠진 은하수에서
채낚시에 걸려든 은갈치를 낚아 올리고 있겠지?
어느 한바다 공동어로수역
두려움과 공포 위
흔들리면서
물론 그렇겠지
이 세상에 떠다니는 별과 꽃과 사랑과
우리 가슴을 할퀴는 온갖 탐욕과 증오와 욕설과
그 강하다는 죽음까지도 편히 잠재우는 곳
그곳은 바다겠지
그러나, 여보게
고대 로마제국 원형 경기장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싸우는 검투사와 같이
온몸을 던져 싸우게
그리고 이기게나
저 멀리 이어도가 보이지 않는가
하늘에만 은하수가 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한라산에도 바다에도 우리 가슴에도 늘
들꽃이 피어나지 않는가
여보게, 들리는가?
폭풍이 생과 사를 넘나드는 한바다
자네 조각배에 숨어든 생쥐의 가냘픈 분홍빛 발처럼
저기 살금살금 다가오는
죽음보다 더 진한 사랑
우리 모두가 은하수라네
이어도가 바로 이곳이라네
 

2007. 5.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