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잎새에 나부끼는 파도소리
김태일
사라봉 길섶 소나무 잎새들이
지나가는 돌풍에 몸서리치듯
텅 빈 가슴 파고들어 쏴아 울음보를 터트립니다.
순간 당신의 초췌한 환영이 섬광처럼
등줄기를 훑어 파고듭니다.
개처럼 일경에게 끌려가던
당신의 다 낡은 바지저고리가
마지막 깃발이 되어 펄럭이던 만세동산,
그 바닷가 청지머루 보리밭 위를 날아가던
바람 까마귀떼 소리가 바로 쏴아 그랬습니다.
당신이 가미가제특공대 영웅이 되어
일장기 두르고 외눈 달아 외발로 돌아오던 날,
그 보리밭 잎새들은
훈장처럼 눈서리 주렁주렁 달고 벌벌 떨며 숨죽여
지나가는 미풍에도 쏴아 흐느꼈습니다.
우리가 왜 모르겠습니까.
당신이 이유도 모른 체 미군정에 쫓겨
한라산 기슭 어느 동굴에서 마지막 숨을 내쉴 때,
그 땅속 심연에서 들려오던 바람소리 역시
파도소리였다는 것을.
어머님이 한 많은 숨비소리 남기고
피다 만 동백꽃 요절하듯
제주바다 깊이 평화롭게 잠들어 갈 때,
당신의 주검을 보듬어 안아 밀려온 파도소리 역시
이 소리였습니다.
오늘도 사라봉에는
당신의 한스런 주검을 조상하듯
별도봉 암벽을 향하여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산책로 노송 잎새마다 허위허위
바람 되어 나부낍니다.
2005. 8. 18
'<발표시>제주바다 숨비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수리강 그 들꽃 (0) | 2013.02.04 |
---|---|
바람의 올레 (0) | 2011.05.21 |
가파도 호박꽃 (0) | 2011.05.20 |
천지연폭포 바위 얼굴 (0) | 2010.11.13 |
시심詩心 (0) | 2009.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