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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시>제주바다 숨비소리

골목 - 김태일

by 숨비 소리 2016. 1. 1.

 

 

골목

 

 

김태일

 

 

나는 골목이 좋다

골목에는 장미꽃이 담장을 뛰어넘기도 하고

능소화가 여름 내내 능청을 떨기도 한다

골목은 좁을수록 좋다

갑자기 고양이가 눈을 번득이기라도 하면

폭죽 터지듯 솟아오르는 소름이

순식간에 온갖 잡념을 날려버리기 때문이다

골목은 휘어질수록

종종걸음 하이힐 소리가 율동적이고

골목은 낮을수록

사슬 풀린 호기심이 툇마루 뛰어넘기 좋다

물론 골목은 길수록 좋다

그 막다른 골목 울타리 너머에는 언제나

단발머리 백합이 하얗게 피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