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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시>제주바다 숨비소리

사라바다

by 숨비 소리 2013. 9. 9.

 

 

사라바다

 

김태일

 

 

저녁엔 그대 생각에 습관처럼 사라봉에 올랐습니다

거기서 잠시 신화에 기대어 우리의 내일을 기웃거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멀리 사라도령의 옷소매가 수평선 스치우며 가뭇없이 넘나들고

성두오모대성당보다도 더 거룩한 기도가 사라바다 하늘로 치솟고 있었습니다

나는 항상 저 신비로운 하늘이나 눈부신 노을이나 우리는 모두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사라바다는 바득바득 그대를 경배해야 할 신상이라고 강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빛나는 몸짓이나 울렁이는 목소리는 거침이 없어서 순간 좀 젖어드는가 싶다가도

신들린 듯 기어이 휘황한 성체를 결단하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시나브로 한 무더기 구름이 일고 사라바다 서천 꽃밭이 온 누리에 넘실대면서

우리의 전생처럼 자청비 환생 꽃이 다시 활짝 피어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사라 등대가 밤새 별밭을 경작한다면 기다리던 내일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쩌면 내일이란 어제와 오늘의 환생일 뿐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겨울 사라바다에 흩날리던 함박눈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 같지만

저기 어영 바닷가 파도가 되어 하얗게 하늘로 되돌아가듯이

내일 또한 수많은 신화를 끌고 이렇게 오늘 속에서 타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대를 향한 내 마음이 늘 이 사라바다에서 윤회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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