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집>그녀를 떠나야 그녀를 보았다

소나기 소나타 - 제주문학 51집 2009

by 숨비 소리 2009. 11. 10.




    소나기 소나타

    김태일


    오랜 가뭄 끝에 소나기가 내리는군요
    아마 저 하늘 위 누군가 떠놓은 정화수가 넘쳐 
    아차, 둑을 무너뜨렸겠지요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에 귀를 모았더니
    어릴 적 앵두 서리하다 엿든 소리
    어미닭이 달걀을 품어 쪼는 바로 그 소리로군요
    그때도 저 빗소리에 소스라쳐
    하서주랑의 새싹이 깨어나고
    타클라마칸 사막의 낙타가 꿈을 꾸었지요
    그렇게 강물이 휘감고 산맥이 휘날려
    사막의 옥수수가 꽁꽁 닫힌 창을 열어젖히고 
    뒤란의 병아리가 알을 깨고 눈을 떴지요
    나 또한 태를 열고 이렇게 태어나
    해와 달의 시간을 서리했고요
    하늘과 땅과 바다, 그리고 이 이름 모를 들꽃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받은 덤이지요
    저기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 소리와 함께


    2009.11. 11

'<시집>그녀를 떠나야 그녀를 보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행의 답안 시위  (0) 2009.11.15
하늘 문, 정동진  (0) 2009.10.09
  (0) 2009.09.12
비양도 노을 다리  (0) 2009.09.11
숨비기꽃  (0) 2009.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