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나기 소나타
김태일
오랜 가뭄 끝에 소나기가 내리는군요
아마 저 하늘 위 누군가 떠놓은 정화수가 넘쳐
아차, 둑을 무너뜨렸겠지요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에 귀를 모았더니
어릴 적 앵두 서리하다 엿든 소리
어미닭이 달걀을 품어 쪼는 바로 그 소리로군요
그때도 저 빗소리에 소스라쳐
하서주랑의 새싹이 깨어나고
타클라마칸 사막의 낙타가 꿈을 꾸었지요
그렇게 강물이 휘감고 산맥이 휘날려
사막의 옥수수가 꽁꽁 닫힌 창을 열어젖히고
뒤란의 병아리가 알을 깨고 눈을 떴지요
나 또한 태를 열고 이렇게 태어나
해와 달의 시간을 서리했고요
하늘과 땅과 바다, 그리고 이 이름 모를 들꽃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받은 덤이지요
저기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 소리와 함께
2009.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