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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그녀를 떠나야 그녀를 보았다

거문오름 숨비소리 - 제주문학 49집 2008년

by 숨비 소리 2009. 9. 2.



거문오름 숨비소리

김태일


호오이~
섬이 숨을 토한다
신음을 한다
높새바람이거나 마칼바람이거나
선흘 곶 거문오름 곳곳 한라의 땅 울음
끊기는 듯 맺히는 듯
다급한 숨비소리
호오오이~
세계자연유산 안내 표지판마다 훈장처럼 번쩍이는 일제 108여단 군홧발 자국, 마구잡이 뚫어 놓은 시커먼 동굴 진지, 허공 더듬는 붓순나무의 가냘픈 발목, 저기 곶자왈 풍혈에서 들려오는 긴 숨비소리 호오오이~
어느 바다에서 밀려왔을까, 분화구 가득 넘실대는 숲 너울 속 갈기갈기 나뒹구는 검은 파도, 이끼 낀 현무암 돌무더기 사이 얼음새꽃 숨비소리 호오오이~
저 멀리 호각 소리, 땅 끝까지 쫓아오는 개 짖는 소리, 어디선가 낯익은 화전민의 퀭한 눈빛, 저주스러운 몸뚱이 하나 숨길 곳 없어 끝 모를 거멀창* 속으로 무너져 내린 무자년 이름 모를 들꽃들의 숨비소리 호오오이~
호오이~
섬이 신음을 한다
한바다에 솟아오른 거문오름 분화구
지하 숨골에서 솟구치는 숨찬 숨비소리 호오오이~
갯바람이거나 뭍바람이거나
끊길 듯 맺힐 듯
한라의 숨비소리
호오오이~


* 거멀창 : 끝 모를 시커먼 동굴을 뜻하는 제주 방언으로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제주 거문오름에 다수 분포


2008.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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