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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그녀를 떠나야 그녀를 보았다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시간

by 숨비 소리 2009. 9. 2.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시간


김태일


아린, 그대 생각에
오늘은 논둑길을 산책하고 있었지
쇠 바다 너머 멀리 멀리
저만큼 젊잖게 시위하던 산등성이 슬그머니 다가와 옷소매 잡아 끌고 물 댄 논 위로 파르르 잔물결 이는 어스름 저녁, 무슨 비밀결사 암호인 양 산비둘기 구구대고 기다렸다는 듯 개구리들 합창이 시작될 즈음, 아마 가락국의 어느 깊은 산골이랬지. 산짐승들 훅훅 거친 숨 몰아쉬고 뒷산에서 뛰쳐나온 시간들이 두런거리던. 저기 오두막집 밥 짓는 연기 피어오르고 어디선가 아린, 그대의 우물물 긷는 두레박 소리 하르르하르르 들려왔던가. 막 골목길로 접어드는데 느닷없이 웬 klaxon 소리, headlight 불빛. 순간 모두 무너져 내리더군, 가락국도 시간도.
그렇군, 아린
내가 이 하늘과 땅과 시간을 긷는군
그대가 나를 긷듯


2008.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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