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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그녀를 떠나야 그녀를 보았다

다시 바람이 - 다층 창간 10주년 특집

by 숨비 소리 2009. 9. 1.




다시 바람이

김태일


다시 가을이다.
바람이 분다.
나는 문득 오래 전 일기장을 발견하여 읽어 내리다 흠칫 놀란 듯 슬며시 가을 오름에 올라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긴다. 하늘 끝에서 밀려와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던 말 한꺼번에 쏟아 붓듯 귓전을 훑어 지나가는 바람소리.
그 바람이 그랬다.
멀어져 가는 그의 머리카락에서 지금처럼 바람이 불었다.
가슴 에이며 스며드는,
멀리 바다를 건너왔는지 소금기가 배어 있기도 하고 어느 골목길에서 소용돌이치다 밀려왔는지 종종걸음으로 재재거리기도 하는. 그 가을 그 자리 잊지도 않고 억새 물결 일렁이며 머리카락 흩날리며 시간조차 거슬러 온몸을 파고든다.
바람이 인다.
다시 그가 온다.
 

2006. 1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