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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그녀를 떠나야 그녀를 보았다

성황당 도둑고양이

by 숨비 소리 2009. 9. 1.



성황당 도둑고양이

김태일


잠자리 한가로이 맴도는 마당
꼬마는 무서워 들어갈 수가 없었다
집은 항상 도둑고양이 차지였다
앙칼진 울음소리
허연 이빨
활활 타는 눈
병아리 채 가는 독수리처럼
바람 같이 뛰어들기라도 하면
등줄기엔 파도가
집채 같은 파도가
쏴아 밀려왔다 밀려나가곤 했다
돌담길 채송화 자글자글 타던 어느 날
보리죽 훔쳐 먹다 들킨 형이 그랬다
번득이는 눈길
내달리는 발길
초가지붕 위로 하얗게 덮쳐오는 파도
온 하늘과 산과 들 뒤흔들었다
헐레벌떡 숨어든 성황당 보리수나무
먹구름 사이
햇살 한 모금 물고
긴 머리 풀어헤쳐 헤헤벌쭉 반짝였다
한라산 천둥소리 어미 소처럼 울고


2006.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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