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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그녀를 떠나야 그녀를 보았다

천지왕 말발굽 소리

by 숨비 소리 2009. 9. 1.





천지왕 말발굽 소리

김태일


멀리 천마(天馬) 말발굽 소리 들려오네요.
오늘따라 한라산 등성이 밤나무 숲 갈바람 소리 더욱 깊어지고요.
아마 그가 오나 봐요.
신화 속 천근 활 가득 은이슬 화살 겨누고.
노크도 없이 콘크리트 벽 뚫고 불쑥 들어오겠지요.
도시란 도시는 모두 꽁꽁 잠겼잖아요.

성불오름 수선화 핀 골짜기로 오세요.
새카만 파도 밀려드는 바닷가 방사탑 따라 삼태성 타고 오세요.
소리 없이 살짝 들어오세요.
이제 때가 됐어요.
이 도시가 쌓아올린 휘황한 반역을 어서 응징해야 해요.
대지의 젖가슴 깊이 파고드는 쇠파이프 철근들,
신(神)의 사랑 모욕하면서 구름 위로 치솟아 오르는 음탕한 빌딩들,
물샐틈없이 밀폐하여 자물쇠로 포박한 성(聖) 에덴 동산.
더 늦기 전에 심판을 해야 해요.
어서 빨리 오세요.
은행나무 둥지에서 까치 소리 들리잖아요.
도시대왕 가을걷이 바람소리 들판마다 수런거리기 시작하고요.

저기 천지왕(天地王) 말방울 소리 들려오네요.
영실(靈室) 단풍나무 타는 파도소리 아흔아홉 골골 넘실거리고요.
아마 그가 오나봐요.
또 다른 해와 달을 어깨에 울러 메고
벼락 구름, 우뢰 바람 휘몰아 그가 재림하나 봐요.
말방울 소리 울리면서 제주신화 천지창조 기적 가득 싣고서.



* 천지왕(天地王) : 제주신화에 등장하는 천지 창조주

* 도시대왕 : 제주신화에 등장하는 풍도(風塗)지옥을 다스리는 신





2006.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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