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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그녀를 떠나야 그녀를 보았다

일출봉

by 숨비 소리 2009. 8. 16.



일출봉
                

김태일



불꽃
생명과 부활의 불길
막내가 태어나던 아침처럼
시나브로
탯줄을 타고 제주바다 수평선 위로 용솟음쳐 오르는 햇살
태양이 세상을 낳는다
가만히 숨죽인 태고적 고요와 적막을 걷어
성산 일출봉이 생명의 깃발 되어 펄럭이기 시작한다
바알갛게 일렁이며 하늘이 열린다
바다가 타오른다
제주신화가 새벽미사 종소리에 춤을 춘다
아흔아홉 봉우리마다 피어나는 생명꽃 향기에
오늘 또 다시 환생한 듯

한라산신과 설문대할망*이
색동 하늘저고리 휘날리며
덩실덩실 불춤을 춘다
금백조와 소로소천국*이
일만팔천 신들의 기도를 모아  
성령으로 부활한 듯
살 오르고 피 흘러
비단 바다치마 펄럭이며
신나락 만나락* 불춤을 춘다
부활과 환생 품은 생명의 불길
핏빛 구름 타고 올라 구천하늘 내달린다
염화시중의 미소가 제주바다 가득 넘실넘실
하늘 높이 쌓아올린 어둠의 신전이 무너져 내린다
도덕도 빛을 잃는다
무덤도 부서져 내린다
일출봉은 태양이 흘린 한 방울의 사랑의 눈물
막내의 탄생 같은 부활의 불꽃이 일출봉을 치솟아 오른다
사랑과 자비의 환생꽃
생명



* 설문대할망 : 제주 섬을 창조했다는 몸집이 어마어마한 할머니
* 금백조와 소로소천국 : 제주 신화 속에 등장하는 부부신으로서
   금백조는 송당 본향당신이며, 제주 일만팔천 신들의 어머니임
* 신나락 만나락 : 신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양


2005.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