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꿈 - 열려라, 참깨
김태일
진눈깨비 질척대는 광화문이었다.
해태상 옆 연자방아 위에서 새빨간 벼슬 꼿꼿이 세운 커다란 장닭이 갑자기 꼬끼오 울더니 두 날개 퍼덕이며 무섭게 달려들었다. 나는 태초 우주 탄생의 기억인 듯 온몸이 얼어붙어 수축하면서 한껏 아가리 벌려 기다리고 있는 어느 정유년으로 빠져들었다.
광장에는 어지럽게 내달리는 말발굽 소리
오방낭에 목이 감긴 채 울긋불긋 휘청거리는 서낭당
옹기종기 피어나는 구름을 막무가내 무단 횡단하는 긴 비행운
나는 북악 동굴 입구에서 온돌방 아궁이에 참나무 가지를 집어넣으며 허겁지겁 불을 지피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동굴 속에서 집채 같은 황금 파도가 끓어오르면서 거대한 이무기가 솟아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마침내 어떤 깨달음에 이른 듯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이 동굴을 향하여 외쳤다.
열려라, 참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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