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발표시>제주바다 숨비소리

북촌의 숨비소리 - 김태일

by 숨비 소리 2016. 12. 24.

북촌의 숨비소리

김태일

4.3 무자년 한겨울

북녘 바닷가 마을이었습니다.

어디에선가 날아온 까마귀 떼 몇 마리가 불길하게 가슴 뻥 뚫린 멀구슬나무에 깃들었습니다. 이윽고 그 우듬지에 매달린 멀구술 열매에서 신기 번득이는 말 떼들이 말갈기 휘날리며 달려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바람이 마을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무자년 동지섣달 어느 날이었습니다. 뿔 휘어진 숫소 몇 마리가 지나가는 사냥개 두어 마리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곧바로 마을에 폭풍이 휘몰아쳤습니다. 누렁이와 검둥이가 미친 듯 짖어대고 온 마을 초가지붕들이 불타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 고함 소리, 신음 소리, 총소리. 사냥개 떼들의 싹쓸이 복수가 시작된 것입니다. 4백여 명의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없이 학교 운동장과 너븐숭이 옴팡밭에 감금되어 집채같은 파도에 마지막 숨비소리 남기며 스러져 갔습니다.

서우봉과 다려도가 검붉게 물들고 온 하늘과 땅과 바다가 새빨갛게 물들었습니다. 하늘을 뒤덮은 까마귀 떼나 마을의 누렁이와 검둥이까지 모두.

제주 북녘 바닷가 마을 북촌은

모두 그렇게 빨갱이가 되었습니다.

'<발표시>제주바다 숨비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벚꽃 엿보기 - 김태일  (0) 2017.06.12
개꿈 - 열려라, 참깨 / 김태일  (0) 2017.03.25
손님 - 김태일  (0) 2016.12.24
하늘나라 - 김태일  (0) 2016.12.24
사려니 숲으로 오세요 - 김태일  (0) 2016.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