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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시>제주바다 숨비소리

사려니 숲으로 오세요 - 김태일

by 숨비 소리 2016. 10. 9.





 사려니 숲으로 오세요


 

     김태일



  그래요 한세상 살려니 힘들겠지요

  이제 온갖 사려 켜켜이 사려 쥐고 사려니 숲으로 오세요

 

  이곳에서는 곶자왈에 사려 싹튼 고사리조차도 때죽나무와 개서어나무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햇살 한 모금 입에 물고 사려하게 새살거리고요

  오솔길에는 오색 무지개 사려 품은 삼나무 향기가 걸음걸음 사려한 팔색조 소리 흩뿌리며 찰랑거려요

  무자년 4.3 당시 털보 삼촌도 사냥꾼에 쫓긴 사슴처럼 헐레벌떡 오로지 살려니 목숨 하나 움켜쥐고 이 사려니 숲 속으로 숨어들었지요

 

  그럼요 사려니 숲길에 구불구불 사려 누운 해룡의 신기 서린 혓바닥 불길이 그 거센 눈보라를 시나브로 사려내었지요

  알프스 샤모니 마을 설국에도 결국 봄이 오기 마련이잖아요

  저기 물찻오름 분화구에 사려 잠든 비바리뱀도 곧 제주바다 솟아오르는 돌고래처럼 하얀 물보라 사려 딛고 날아다니겠지요

 

  이제 갖가지 사려 가슴 가득 사려 안고 사려니 숲으로 오세요

  그래서 아무 졸참나무 등걸에나 사려 앉아 꺼이꺼이 울어요

  한세상 살려니 어찌 아니 슬프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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