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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시>제주바다 숨비소리

고향 단상 - 김태일

by 숨비 소리 2015. 1. 28.

 

고향 단상

 

 

 

김태일

 

 

 

고향 바닷가에 서면 항상

등 뒤에서 비가 내린다

 

그곳에선 지금도 천둥소리가

허연 거품 물고 칼바위 허리에서 자지러진다

어쩌다 구름 뒤에서 간신히 뛰어내린 햇살이

돌담 틈에서 샛노란 햇병아리처럼 촐랑이기도 하지만

눈앞에는 언제나

연옥에서 쓰다 버린 시커먼 문장만 파닥거린다

 

아직도 뒤뜰에는 팔다리 흐물거리는 복숭아나무가

날개 꺾인 우산 비껴 쓴 체

도둑고양이 품어 안아 슬피 울고

달이 뜨면 골목마다 헛배로 눙치던 장닭들이

기다리던 아침이 왔다고 홰를 치며 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고향에 가면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나는 종종 나도 모르게 고향으로 차를 몬다

마치 두고 온 전생 기웃거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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