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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시>제주바다 숨비소리

다시 유목의 시대 - 김태일

by 숨비 소리 2017. 11. 25.

 

 

 

다시 유목의 시대

 

 

  김태일

 

 

말들이 다시 지구촌을 내달린다.

유라시아 질주하던 유목의 시대는 가고

새로운 유목의 시대가 왔다.

 

말들이 달린다. 자판 위를 내닫는 말발굽 소리 요란하다. 말들이 달려 나가 문자가 되고 문장이 된다. 수많은 말 떼들이 말방울 소리 울리며 마을마다 고을마다 광속으로 질주한다. 말들이 날개 달아 전파를 타고 훌쩍 오대양 육대주로 날아오른다. 뜰 앞 휘파람새도 달리는 말 위에 올라타는가 싶더니 한 순간에 허드슨 강가까지 날아가 지저귄다.

 

천둥 번개 들고 국경 허물고 있는 인터넷 제단 앞에는 그동안 장벽 높이 쌓아올려 군림하던 신들도 머리를 조아린다. 달에서 방아 찧던 토끼도 집으로 되돌아와 자판을 두들긴다. 파도가 하늘 위에서도 물결치고 구름이 장미꽃 속에서도 피어난다.

 

말들이 달린다. 이야기와 정보를 싣고 달린다. 풍경을 싣고 달린다. 노래를 싣고 달린다. 동영상을 싣고 달린다. 나라마다 도시마다 수많은 말 떼들이 말갈기 커서 휘날리며 세계를 향하여 치닫는다. 지금 시드니 바닷가에 뜨는 쌍무지개가 내 손바닥 스마트폰에서도 모닥불을 피워 올린다. 다시 유목의 시대가 왔다. 지구촌 유목의 시대가 왔다.

 

말머리를 클릭하는 순간

모니터에서 내달린 말무리들이 순식간에

태평양 한바다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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